늦바람
서른다섯, 당시 내가 살던 옥탑방 아랫집 여자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나는 흡연자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 전신주 앞에서 마주친 그 여자는, 한여름 뙤약볕을 쐬며 맨가슴에 민소매 하나만 덜렁 걸친 채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어찌나 맛깔나게 태우는지 담배 맛을 모르는 내 입에 살짝 군침이 돌 정도였다. 한여름 불볕더위나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눈총 따위로 그 여자와 담배 사이를 갈라놓기는 부족해 보였다. ‘도대체 저게 어떤 맛이길래? ’ 입맛만 다시고 있기 못내 아쉬웠던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가 담배 한 대만 얻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건물을 오가며 안면이 트인 사이였기에 그녀는 거리낌없이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건네주었다.
첫 담배에 얽힌 경험담을 들어보면 어떤 이는 처음 맛보는 매캐한 연기에 혼쭐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연기를 입안에 살짝 머금었다가 그대로 뱉어내는, 이른바 겉 담배만 피우고 말기도 한다는데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골초였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어깨 너머로 터득한 흡연 기술을 첫 모금부터 제대로 써먹었다. 탁한 담배 연기를 단전 깊숙이까지 쑥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니, 가슴이 시워언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다년간 간접흡연으로 단련된 나의 허파는 담배 연기를 별 탈 없이 소화했다. 숨은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길로 곧장 편의점으로 가 아랫집 여자에게 갚을 말보로 레드 한 갑과 온갖 종류의 담배를 샀다. 아는 담배라고는 할머니가 태우던 버지니아 골드뿐이라 껍데기가 이뻐 보이는 것으로 대강 골랐다. 그러곤 이 담배 저 담배를 태워 가며 내 기호에 맞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알싸한 박하향이 나는 놈이 내 취향이었다.
하루 대부분을 집에 틀어박혀 보내던 나는 곧 실내 흡연을 즐기게 되었다. 옥탑방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낡은 매트리스에 널브러져 담배 한 까치를 물고 있노라면 왕가위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삼만원짜리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오래된 노래는 그 장면에 낭만을 더했다. 서른다섯 살의 빈털터리 이혼녀인 내가 잠시나마 세상 부러운 것이 없던 순간이었다 .
하지만 지금의 애인을 만나 멀끔한 빌라로 이사 한 뒤로부터 좀처럼 실내 흡연을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다 전자담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냄새가 배지 않는다는 점을 핑계 삼아 서재에서만큼은 종종 담배 맛을 본다. 애인은 역한 냄새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내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담배를 싫어한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건강에 영 소홀한 나를 두고 그녀는 틈만 나면 금연 이야기를 꺼낸다. 흡연으로 병을 얻은 사람들의 사연이며 담배의 폐해를 다룬 영상들을 찾아다 보여주기도 하고, 담배를 끊으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회유도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르는 나에겐 그저 귀찮은 잔소리일 뿐이다.
더구나 오늘처럼 글방 원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날엔 금연할 생각이 더 없어진다. 도대체 뭘 써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거나 그럴듯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다스리지 못한다. 그 순간 타자를 멈추고 담배를 한 대 태우면 화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환기되고 종전에 막힌 대목에서 글이 술술 풀리기도 한다. 담배는 내게 좋은 글동무인 셈이다. 이 밖에도 애인과 다툼 중 한 마디만 더 뱉으면 파국을 맞이할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할 때나 무게를 잡고 싶다는 둥 시시한 생각이 들 때, 친구와 농담을 따먹으며 허튼 시간을 보낸다든지 사뭇 진중한 대화를 나눌 때도, 궁금한 입을 달래 줄 주전부리나 식후에 입가심이 필요할 때,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들기 전 심신의 안정을 위하여. 여러 방면에서 담배는 요긴하게 쓰인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살 안 찌고 맛있는 기호식품이 니코틴이라는 게 나의 견해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그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면 무작정 손가락질만 하기엔 억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건강을 돌보는 측면에서 담배는 내게 명약인 셈인데, 담배의 해로움을 선전하는 영상에 세뇌돼 버린 내 애인의 눈에는 미처 그 효험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