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찐따
방학철이 되면 우리 집에선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전남편과 살고 있는 나의 두 자녀는 방학 동안엔 나와 함께 제주에서 지내는데, 이 잠깐의 동거에 ‘기묘하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거기에 내 현 동거인이자 여자 친구 형선도 함께이기 때문이다.
첫째 딸 아영은 기묘한 동거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다.
아영과 나는 수다스러운 모녀다. 아영은 요즘 최대 관심사인 아이돌 NCT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학교 친구들 사이의 가십거리, 심지어 본인이 언제 마지막으로 대변을 눴는지까지 틈만나면 내게 와 조잘조잘 떠들어댄다. 그럴 때면 나는 코에 피어싱을 할 건데 쌍 코걸이를 할지, 한쪽에만 할지, 아니면 쇠코뚜레처럼 가운데에 뚫을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이혼 후 달라진 내 인생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결혼은 신중해야 한다”라는 뜬금없는 충고를 늘어놓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 주제엔 정해진 범위가 없기에 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주 잠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성 지향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하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그 아이 나름대로 잘 소화해 낼 것으로 믿었다.
내가 형선과의 관계를 털어놓았을 때, 아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엄마에게 직접 들을 줄은 몰랐다며 오히려 자신에게 고백한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다 곧 음흉한 눈을 뜨고서, 여자끼리 뽀뽀도 하고 다 하는 거냐며 물었다. 나는 여자끼리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한술 더 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고 싶었지만, 형선이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만류하는 탓에 그쯤에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대신 시장통 약장수처럼 ‘애ㅡ들은 가. 애ㅡ들은 가.’하며 아영에게 훠이 훠이 손짓하고서 우스꽝스럽게 고백성사를 일단락시켰다.
나의 아들 종효는 올해 12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젖병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우리 종효가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엄마' 아니면 '배고파'다. 그마저도 엄마라고 하지 않고 조금 어눌한 말투로 옴마라고 발음한다. 나 역시 그 아이의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지 않고 쪼노라고 부른다. 종효는 말수가 적다. 수다쟁이 누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밥 먹었어? 잘 잤어?’와 같은 아주 단순한 질문 이상으로 복잡한 질문을 받으면 말을 더듬기도 하고, 하여간 제 누나와 달리 조금 어리숙한 면이 있다. 나는 종효의 그런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혹시 내 아들의 성장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쪼노야! 오늘 저녁엔 뭐 먹고 싶어?”
나의 물음에 종효는 더듬 더듬 말을 이었다.
“어..나..움..그거..옴마가..저..전에..해..해준거..그..간장..고기..큰~냄비에…!”대충 갈비찜을 먹고 싶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때, 건너편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아영이 벌떡 일어나더니 종효의 아기 같은 모습은 연기라고 했다. 엄마가 없을 땐 말을 또박또박한다나… 대화를 듣고 있던 형선도 내가 다 큰 아들을 아기처럼 대하는 바람에 아이의 어리광이 심해지는 것이라며 자제하랬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가뿐히 흘려보내고, 오히려 ‘너희가 질투심에 눈이 먼 것’이라며 고슴도치 엄마처럼 종효를 싸고돌았다. 사실 아영과 형선의 말이 일리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얼마 안 되는 방학 동안만이라도 엄마 앞에서 아기 행세를 하는 게 뭐 그리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맹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던 종효는 저녁에 갈비찜 먹는 거냐고 물었다.
갈비찜을 한 솥 해치우고 일찍 잠이 든 종효를 제외한 우리 세 사람은 아영이 즐겨보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영은 갑자기 목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엄마 그거 알아? 임종효 5학년 대표 찐따야.”
나는 사색이 되어 아영에게 되물었다.
“내 아들이 찐다라고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거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종효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아영은, 종효가 내게 좀처럼 말하지 않는 학교생활의 뒷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아영의 말에 따르면, 그들의 학교엔 같은 학년 친구들과 놀지 않는 ‘학년별 대표 찐따 모임’이 존재하는데, 그중 5학년 대표가 우리 종효라고 했다. 나는 내 아들이 찐따라는 사실보다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같은 반 애들이 종효를 따돌리는지, 때리거나 괴롭히진 않는지, 아이들 아빠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선생님께 연락해야 하는 건 아닌지 속사포 질문을 쏟아 내고선, 전쟁이라도 터진 듯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아영은 손사래를 치며 동갑 친구는 없지만 찐따 친구는 있으니 그만 두라고 했지만, 좀처럼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원자폭탄을 터뜨려놓은 아영은 방학 동안 친구들과 약속이 많다며 예정보다 일찍 육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종효는 며칠 더 제주에 머물렀다. 아영의 폭탄 발언 이후로 나는 종효를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표정이 어두운가 싶다가도 금세 킥킥거리며 게임기를 만지는 종효를 보며 걱정과 안심이 교차했다. 제 인생 찾아 아이들을 떠난 엄마였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큰일이 닥쳤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물어도 종효에게선 별다른 대답을 얻지 못했고, 그렇다고 무작정 학교에 찾아갈 수도 없으니 곤란한 노릇이었다. 아무런 수확 없이 애타는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방학이 끝나갈 때쯤, 종효의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제주 친구들과 모여 종효의 생일잔치 계획을 세웠다.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친구, 음식 장만을 도와주겠다는 친구, 선물은 뭘 할지 고민하는 친구. 아이처럼 신나보이는 그들 덕에 마음이 든든했다. 종효에게 엄마 친구들이 생일잔치에 올 거라고 하자, 아이는 두 눈을 반짝였다. 종종 그들을 만나 어울렸던 종효는 '엄마의 친구들'을 매우 좋아했다. 아직 잔치가 열리기 전 인데도, 이번 여름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자신의 생일이라며 귀엽고 바보 같은 소릴 했다. 생일 잔칫날, 나의 친구들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오랜만에 친구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그들은 어쩐지 신나 보였다. 종효가 좋아하는 육포와 만화책, 장난감이 테이블 위에 가득 쌓였다. 생일 축하 노래가 울릴 때, 종효는 눈물을 흘렸다. 그 아이는, 너무 행복해서 운다고 말했다. 몇몇은 종효를 따라 눈물을 훔쳤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엔 종효가 좋아하는 마피아 게임을 했다. 다들 속아주는 척 눈짓을 주고받으며, 마지막엔 종효가 이기도록 판을 깔아줬다. 또 노래 앞부분만 듣고 제목을 맞추는 게임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출신도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인 내 친구들이, 어느새 내 아이의 친구가 된 듯 어울려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고민이 한없 어리석게 느껴졌다.
종효는 집에 돌아와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어른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 꾸러미를 몇 번씩 펼쳐 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아영과 나는 전화선을 붙잡고 각자 오늘 하루에 대한 짧은 소견을 나눴다. 아영은 친구들과 물놀이를 다녀오고 난 뒤부터 피부병이 생긴 것 같다며 투덜대더니, 뜬금없이 ‘왕따’와 ‘찐따’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왕따는 친구들이 안 놀아주는 애고, 찐따는 친구들이 같이 놀려 해도 스스로 겉도는 애들이라나… 종효는 찐따이긴 하지만, 왕따는 아니니 걱정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놈의 지지배, 진작 말해 주지. 잠이 든 종효의 얼굴은 미소를 띤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