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말랭이의 막글 모음집

넌 나고, 난 나야.

왜 저래

누군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말할 때면 반사적으로 ‘왜 저래’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질문을 가장한 그 말은, 사실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다. 다만 내 상식선에서 벗어난 인간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비난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나와 별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눈살 한번 찌푸리고, 그 언행을 마음껏 재단하고 나면 나는 곧 그들에게서 무관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그런 오만한 관용을 부려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만약 형선을 바라보는 나의 턱끝에 ‘왜 저래’라는 말이 차올랐다면, 그건 우리 앞에 펼쳐질 지독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나는 형선을 대할 때 유난히 더 야박해진다. 그녀가 작은 실수라도 저질렀다 치면 나는 그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내 상식 밖의 일로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라며 그녀의 행동을 재단하다 못해 아예 분자로 만든다. 형선과 나는 같은 종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른 사람이다. 식성, 생활 습관, 말투, 사고방식, 성격까지. 각자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에 교집합이란 없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형선을 향해 불만을 쏟는 나를 보며, 한 친구는 나 같은 종자에겐 그만한 사람도 없으니 좀 참고 살라고 말한다. 내가 그의 조언을 실천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인간이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서른일곱 여성의 몸에 갇힌, 아직 한참 덜 자란 어린애다. 덩치만 커버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탄생 이래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이 전쟁 중에 도저히 협상 불가능한 안건을 하나 꼽자면, 스스로 어떤 문제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것을 대하는 형선의 태도다. 형선은 대부분의 문제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잘못한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니. 다시 생각해 봐도 내 뇌가 도마 위에 삭ㅡ하고 올라가는 느낌이다.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한 번도 허용해 본 적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일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실수 하나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이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소진하는 일인 줄은 알지만, 실수에 관대해지는 건 어쩐지 비겁한 행동으로 느껴진다. 내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당연히 갖추고 살아야 할 태도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까운 이일수록 그를 타인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형선을 나처럼 다루고, 형선이 나처럼 반응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에 분노한다. 이 사람은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과 또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형선은 나와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에 이토록 분노한다는 건, 그녀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그 분노는 쉽게 방향을 잃고 사랑의 언어를 비난으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벗어나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타인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을 타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혼자만의 기준을 내세워 몰아붙이는 나에게, 형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연다.

“진짜 왜 저래. 나라면 이런 문제로 그렇게까지 화내지 않았을 거야.”